묵직하게 가라앉은 밤은 어두웠다. 설령 눈이 마주친다 한들 거리가 멀어 한번에 알아볼 수 없는 거리였는데도 내 쪽으로 몸을 돌리는 재현 오빠를 보고 놀라 차 뒤로 몸을 숨겼다. 네. 지금 도착했어요. 먼저 들어갈게요. 걸려온 전화를 받는 재현 오빠의 목소리가 공기 중에 웅웅 울려 내가 있는 곳까지 흐릿하게 퍼졌다. 침을 꼴깍 삼키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건물 안으로 들어서는 오빠의 뒷모습이 사라지고 나선 잠시 생각하다 다시 차에 올라탔다. 이대로 들어갔다간 무조건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할머니의 유일한 조카. 안 그래도 사람이 귀한 이 집안에서 제멋대로 사는 이민형을 대신해 할아버지가 예뻐하고 가능성을 걸던 사람은 단 한 명, 재현 오빠뿐이었다. 어릴 때부터 왕래도 잦았다. 재현 오빠랑 처음 만나게 된 것 역시 할아버지가 오빠를 집으로 불러 밥을 먹던 날이었다. 그런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오빠가 장례식장에 오는 건 당연했다. 다만 내가 잠시 이민형 걱정에 그걸 까먹고 있었을 뿐이었다. 조금만 더 일찍 왔거나 늦었으면 꼼짝없이 장례식장에서 이민형과 함께 삼자대면을 할 뻔했다. 철렁하는 마음으로 겨우 한숨을 뱉어냈다. 시트에 몸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고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해할 때쯤, 전화가 걸려왔다. 이민형이었다.



 -“너 지금 어디야. 오고 있어? 도착했어? 아직 아니지? 오지 마.”



 여보세요. 그 짧은 말을 할 틈도 주지 않고 다급한 목소리가 줄줄이 쏟아졌다. 보지 않아도 뻔한 장면들이 머리로 스쳐갔다. 조문 온 재현 오빠를 당연히 마주쳤을 거고, 당연히 내 생각으로 이어져 불안해졌겠지. 뒤이어질 말이 뭘까 생각하며 그냥 잠자코 있었다.



 -“그러니까, 나… 나, 그, 갈아입을 속옷이 없어. 가져다 줘. 그리고, 그, 또…”



 그러나 이민형은 재현 오빠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대신 당장 집으로 돌아가 잡다한 것들을 챙겨 와달라고 했다. 아마 재현 오빠가 한국에 들어온 사실 자체를 나한테 숨기고 싶은 것 같았다. 오빠랑 다시 마주치기만 해도 제가 죽어버리겠다느니, 나를 어디 가둬두겠다느니 떠들던 이민형이 맞나 싶을 정도로 목소리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말을 더듬으며 칫솔이니 면도기니 하는 잡다한 것들을 부탁했다. 아까 이민형의 전화를 받으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말하지 않아도 이미 챙겨온 것들이었다. 조수석에 잡동사니가 담긴 쇼핑백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알았어. 가져올게. 또 필요한 건 없어?”



 근데… 그냥. 안 그래도 제정신이 아닐 텐데, 재현 오빠 일까지 신경 쓰고 있는 이민형이 안쓰러워져서. 군말 없이 알겠다고 했다.



 -“천천히 와.”

  “응. 그럴게.”



 전화를 끊고 시계를 확인했다. 대충 절반 정도 왔다고 치고, 차를 돌려 집에 들렀다 다시 병원에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릴지 시간을 계산해봤다. 한 시간 정도면 넉넉했다. 어둑한 차 내부에 앉은 채로 장례식장 건물의 입구만 계속 쳐다봤다. 외제차들이 끊임없이 멈춰서고,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 역시 그 안에서 끊임없이 내렸다. 두어 번 뵌 적 있는 재현 오빠의 부모님도 그 중 하나였다. 그리고 건물 안에서 나와 주변을 살피는, 익히 얼굴을 아는 가드들도 몇 보였다. 할머니의 사고까지 겹쳐진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무거웠고, 카메라를 들고 얼쩡거리는 기자 몇몇을 가드들이 되돌려 보내는 장면을 멍하니 바라봤다. 

 

 30분. 또 1시간. 이제 슬슬 나도 들어가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때마침 재현 오빠가 건물 밖으로 나타났다. 부모님과 함께였다. 그리고 뒤따라 나온 건 상복을 입고 있는 이민형이었다. 부모님에겐 마지 못해 고개 숙여 인사는 하지만 재현 오빠와는 마치 모르는 사이인 것처럼 서로 눈 한번을 마주치지 않고 있었다. 곧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차로 재현 오빠와 부모님이 모두 올라타고, 차가 병원 부지 밖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것까지 이민형은 그 자리에서 꼼짝없이 바라봤다. 그리고 건물 입구에 세워뒀던 가드들에게 뭐라고 말을 전했다. 괜한 긴장으로 숨이 작아질 때쯤, 이민형이 핸드폰을 들었다. 곧바로 나한테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야?”

 


 여전히 재현 오빠를 태운 차가 사라진 곳을 주시하며, 이민형이 물었다. 주차장에서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던 걸 들키면 재현 오빠를 봤다는 것도 같이 들킬 수도 있었다. 막 도착한 것처럼 보이도록 급하게 차에 시동을 한번 걸었다 껐다. 수화기 너머로 넘어갔을 시동 소리에 이민형의 시선이 주차장으로 향했다. 멀리서 번쩍이는 헤드라이트가 이민형을 순간 밝힌 뒤 꺼졌다. 내 차를 발견한 이민형은 다시 한번 병원 출구 쪽을 확인하고, 안도한 듯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 방금 도착했어.”

 -“응. 보여. 같이 들어 가.”



 전화를 끊고, 쇼핑백을 든 채 차에서 내렸다. 조금씩 걸어갈 수록 이민형의 얼굴이 선명해졌다. 어딘가 초조함이 맴돌던 표정이 차분하게 변해갔다. 분명 오늘 아침에도 질릴 정도로 봤는데 꼭 긴 텀을 두고 다시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새까만 상복. 팔 위에 둘러진 완장. 상주 복장을 입은 이민형이 어딘가 익숙했다. 이미 본 적 있었다. 이민형의 부모님과 우리 아빠가 한번에 죽음을 맞이했던 때, 비교적 한산하고 작았던 아빠의 빈소와 다르게 가장 규모가 큰 빈소에서 쉴새없이 조문객들을 맞이하던 어린 이민형이 떠올랐다. 그대로 자란 이민형은 똑같은 일을 한번 더 반복하고 있었다. 가족 하나 없이 처량하게 살아온 건 내 쪽인데,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민형의 꼴이 안쓰러워 견디기 힘들었다.



  “밥은.”

  “너는.”

  “...정신이 없어서. 아직.”



 보자마자 하는 첫 마디가 내 끼니를 챙기는 거였다. 정작 아침부터 소식을 듣고 병원에 있느라 한 끼도 못 먹은 건 자기면서. 한숨이 푹 터져나왔다. 



  “사람 많아?”

  “응.”

  “다른 가족들은?”

  “다른 가족이 어딨어 내가.”



 조금이라도 한가하거나 지킬 사람이 있으면 잠깐 나가 뭐라도 좀 먹고 오라고 할 생각이었다. 근데 이어지는 말에 잠시 멈칫했다. 장례식장을 지킬 만한 직계 가족이, 아무도 없었다. 할아버지는 형제 없는 외동이었고 할머니는 중환자실에 계셨다. 하나뿐인 자식 내외는 이미 앞서 보낸지 10년이 다 되어가고 남은 건 오직 이민형뿐이었다. 아차 싶었다. 괜히 눈치를 살피며 주춤거리면 이민형은 덤덤하게 머리를 쓸어넘겼다. 가자. 목소리는 초연했다. 





 새하얀 국화가 빼곡한 단상 가운데 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놓여있었다. 그닥 좋은 기억은 없었지만, 이젠 가물가물해진 어린 시절의 엄마나 아빠보다 할아버지와 관련된 장면들이 좀 더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로 오래 봐왔고, 또 날 거둬주시기까지 한 분이었다. 향초에 불을 피워 올리고 절을 했다. 이민형은 넋이 빠진 채로 보기만 했다. 조금 씁쓸한 건 이민형도 나도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장례의 절차가 익숙하단 점이었다.



 계속 장례식장을 지키긴 했지만 내 위치는 애매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는데 한 집에서 오랫동안 할아버지랑 살아온 나를 정의할 말이 딱히 없었다. 손님들은 대개 이민형 옆에 있는 나를 어색하게 쳐다보다 시선을 거두는 게 보통이었지만, 이민형과 직접적인 안면이 있는 친척 어른들은 눈치를 살피며 내가 누군지 넌지시 묻기도 했다. 그럼 이민형은 대답을 안 했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나서서 어릴 때부터 신세를 져왔다고 애매하게 설명했다. 아, 네가 민형이 걔구나. 민형이의 걔. 친척들이 날 이해하고 있는 방식은 딱히 유쾌하지도 불쾌하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으며 북새통을 이루던 빈소는 자정이 다 되어서야 겨우 한산해졌다. 쉴 틈없이 조문객을 맞이하던 이민형도 이제야 한숨 돌리며 빈소 구석에 앉을 수 있었다. 의자에 앉아 별 말 없이 영정사진을 바라보던 이민형의 눈꺼풀이 느리게 감기고 뜨이길 반복하다가, 이내 완전히 감겼다. 피곤하지 않은 게 이상했다. 상을 치루는 첫 날이었고, 이쪽 저쪽 인맥 넓은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손님들은 끝도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민형이 하루종일 빈 속이었다는 게 다시 떠올랐다. 뭐라도 좀 먹어야 될 텐데. 이민형이 깨지 않게 조심히 자리를 벗어나 접객실에 가봤지만, 시간이 늦어 이미 정리를 끝낸 주방엔 딱히 먹을 만한 게 없었다. 다시 분향실로 돌아오자 얕게 잠이 든 이민형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불이 너무 밝아서 눈이 시린가. 잠깐이라도 꺼줄까 싶었지만, 괜히 잠만 깨울 것 같아서 우선은 그대로 두기로 했다.


 간단하게 요깃거리라도 사다주려고 지갑을 챙겨 분향실을 나섰다. 마침 맞은 편에 불을 밝힌 편의점이 건물 입구 너머로 보였다. 별 생각없이 유리문을 여는데, 바깥의 찬 공기가 손끝에 닿는 것과 동시에 문이 턱 붙잡혔다. 



  “어디 가시게요.”

  “...네? 저요? 그냥, 잠깐 편의점에…”



 어릴 적 본가에 살 때부터 봐 왔던, 이미 안면이 있는 가드였다. 건물 입구를 지키듯 서 있더니 내가 나가려고 하자마자 곧바로 문을 더 열지 못하도록 앞을 막아왔다. 당연히 기자들이나 외부인을 막을 목적으로 서 있는 줄만 알았는데, 날 붙잡는 게 이해가 안 됐다.



  “같이 가시죠.”

  “...왜요?”

 


 뭔가 이상했다. 먼 곳이니 데려다주겠단 뜻이라기엔 편의점은 고작 20미터 남짓한 거리였고, 겨우 인사나 주고 받던 어색한 사이였으니 같이 편의점에 들르자는 뜻은 더더욱 아닐 게 뻔했다.



  “뭐야, 어디 가.”



 도련님이… 하며 말문을 열던 가드의 대답을 뚝 자르고,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이민형이 나타났다. 그대로 팔목이 붙잡혀 몸이 뒤로 돌려졌다. 마주한 눈빛은 이리저리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편의점에 가던 길이라고 했지만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고, 날 붙잡고 있는 손등 위로 핏줄만 도드라질 뿐이었다. 그러더니 뜬금없이 들고 있던 내 핸드폰이랑 지갑을 뺏어버렸고, 더 찾는 게 있기라도 한 듯 내 주머니를 더듬기까지 했다. 



  “왜, 뭐 찾는데?”

  “너 차 키 어딨어.”

  “차 키…? 갑자기?”

  “어디 있냐고.”

  “아까 가방에 넣어놨으니까… 거기 있겠지.”



 왜. 뭐 때문에 이러는데. 몇 번이나 물었지만 이민형은 대답도 안 했다. 대신 화난 것처럼 그대로 나를 끌고 건물 안으로 들어와 한 손으론 나를 꽉 쥐고, 다른 손으론 내 핸드폰을 뒤지기 시작했다. 핸드폰 잠금을 풀고 통화목록과 문자 목록에 최근에 썼던 어플까지 모조리 확인하는 꼴을 보고 나서야, 이러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재현 오빠 때문이었다. 재현 오빠가 한국으로 돌아왔고, 여차하면 나와 마주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으니 지금 이민형 머릿속에 또 무슨 상상이 펼쳐지고 있는지는 안 봐도 훤했다. 제가 잠든 틈을 타 오빠를 만나러 가려던 건 아닌가 의심하고 있는 거다. 누구랑 연락한 적이 없으니 핸드폰은 깨끗했지만 전부 보고도 이민형의 표정은 계속 초조했다. 어쩌면 이 정도로 안심하지 못하는 건 당연했다. 연락한 흔적이야 지워버리면 그만이란 걸 나도 이민형도 숱하게 반복되던 일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갑자기 사라져서… 놀랐잖아.”



 한참 후에, 나랑 눈도 못 마주친 채로 이민형이 말을 얼버무렸다. 제 행동이 이상하다는 건 아는 것 같았지만 뜬금없는 이 상황의 부연설명이 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내가 사라져서 놀랐는데 내 핸드폰은 왜 뒤지고, 가드는 왜 내가 혼자 밖으로 못나가게 하는지. 재현 오빠가 한국에 와있다는 한 마디면 모두 설명 되겠지만 이민형은 별다른 말을 덧붙이지 않았다. 


 얘는 나를 사랑하는 거지 믿는 건 아니라서. 


 이민형에겐 사랑과 믿음 사이에 교집합이 없었다. 있었다 한들, 내가 몇 번이고 재현 오빠에게 흔들리며 없애버렸다. 그래서 지금 이민형은 내가 재현 오빠 소식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만에 하나의 가능성마저 두려워져 날 감시하는 중인 거다. 혹여 내가 오빠를 찾아가기라도 할까 봐. 아니면 오빠가 나를 찾아올까 봐. 그러다 다시 한번 저를 두고 떠나버릴까 봐. 


 웃기게도 사랑을 받아들이고 난 뒤로 끔찍하던 이민형의 면면들이 다르게 느껴질 때가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처럼, 핸드폰과 지갑을 돌려달라고 손을 내밀었지만 되려 제 상복 주머니 속에 감추듯 넣어버리는 이민형을 어떻게든 이해하기 위해 애 쓰고 있었다. 그런 나를 자각할 때면 흠칫 놀라곤 했다. 역시 사랑은 정신병의 일종이 맞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했다.



  “너도 진짜… 이상하다.”



 그리고 이민형의 비위를 맞춰주겠답시고 아무 것도 모르는 척 어설픈 연기를 하는 나를 보며 다시 한번 절절하게 느꼈다. 사랑은 진짜… 정신병이다. 우리에겐 믿음 말고 정신병과 사랑 사이의 교집합만 있었다.


 평소처럼 찌푸린 얼굴을 꾸며내면, 내가 혹시 뭐라도 눈치 챘을까 초조해하던 이민형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꽉 쥐고 있던 팔의 힘도 느슨해졌다. 나를 가볍게 끌어당기며 빈소 쪽으로 발을 옮기는 이민형을 잡아세웠다.



  “왜?”

  “편의점 가자.”



 멍하게 눈을 깜빡이는 이민형을, 이번엔 내가 반대로 잡아끌었다. 가드는 이번엔 문을 미리 활짝 열어두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이민형이랑은 괜찮지만 나 혼자는 못 나가게 하라고 지시라도 해둔 듯싶었다. 어이없는 헛웃음이 소리없이 터졌다. 그래도 이번만큼은 모르는 척 속아주며 최대한 심기를 건들지 않을 생각이었다.



 편의점에서 이것저것 사들고 빈소로 돌아왔다. 새벽 시간이라 그런지 더는 조문객이 없었고, 자기들이 있을 테니 들어가 쉬라는 가드의 말에 그대로 이민형을 끌고 상주실로 들어왔다. 온전히 둘만 남은 공간에서 이민형은 제 몸을 기대듯이 나를 끌어안았다. 지친 것 같기도, 안심한 것 같기도 했다. 축 처지는 이민형을 소파로 밀어앉히고 에너지바 하나를 집었다. 포장까지 까서 건넸지만 고개를 저었다. 먹어. 생각 없어. 한 입이라도 먹어. 됐어. 의미 없이 반복되는 대화를 몇 번 더 이어가다, 문득 짜증이 욱 차올랐다. 어차피 내가 꺾을 수 없는 고집이란 걸 깨닫곤 금세 포기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그러다 쓰러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해라. 봉투 속으로 에너지바를 다시 넣으려는데, 이민형이 내 손을 붙잡아왔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뚫어버릴 듯 빤한 시선이 따라붙었다. 



  “나 걱정해?”

  “...그럼 이 상황에 걱정이 안 되겠어?”



 그냥 그렇다고 하면 될 일을 낯간지러운 분위기에 죽어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 나는 굳이 날카롭게 받아쳤다. 심기를 건들지 않겠다고 다짐한지 겨우 10분만의 일이었다.



  “나 사랑해?”

  “...어. 사랑해.”



이번에는 다행히 참았다. 평소 같았으면 귀찮게 굴지 말라고 잘라냈을 텐데, 습관처럼 비아냥거는 시비조를 걷어내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와 동시에 곧바로 내 팔목을 훅 끌어당기는 힘에 손에 쥐고 있던 에너지바가 떨어졌다. 이민형이 다시 나를 안았다. 소파 위에서 끌어안은 탓에 무릎이 불편하게 맞닿았지만 이민형은 놔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나 이제 너밖에 없어. 투정을 부리듯 내 어깨에 고개를 묻은 채 느릿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안쓰러웠다. 등 뒤로 손을 뻗어 잠깐 망설이다, 어색하게 두어 번 토닥거렸다. 이민형을 달래주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피식대는 이민형의 힘 빠진 웃음이 맞닿은 내 살갗 위로 진동처럼 퍼졌다.



  “너 지금 후회하지? 할아버지한테 못되게 말했던 거.”



 별 생각 없이 가볍게 툭 말을 던지고 나서 곧바로 후회했다. 여기서 이민형이 울어버리면 더 정성스럽게 달래줄 자신은 없는데 울기 딱 좋은 말을 해버렸다. 뜨끔하며 다시 한번 이민형의 등을 멋쩍게 토닥였고, 그럼 이민형은 내 어깨를 파고들며 고개를 비비적거렸다. 



  “아니. 후회 안 해.”

  “...”

  “그냥... 무서워.”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은 깊게 생각도 안 하고 바로 뱉어낸 이민형은 다음 말을 덧붙이기까지 한참을 뜸 들였다. 



  “뭐가 무서운데?”

  “너 사라질까 봐.”

  “...내가? 사라진다고?”

  “못 믿겠어. 불안해. 사랑한다고 해도 일부러 마음 놓게 하려고 한 거짓말 같고…… 여태까지도 나 제일 불행해질 때까지 억지로 참고 기다린 것 같고, 그러다 통쾌해하면서 도망갈 것 같아. 나 괴롭히려고.”



 당연히 할아버지나 할머니 얘기가 이어질 줄 알았지만 전혀 예상도 못한 화제 전환이었다. 조용히 경악했다가, 다 듣고 나서는 조금 허탈해졌다. 남들과 비교하긴 어려워도 나와 이민형의 사이는 시간이 갈수록 나름 견고해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행해지길 기다리다가 최악의 순간에 도망가려 한다니. 그리고 내가 통쾌해할 것 같다니. 난 사랑하는 사람의 불행을 두고 통쾌함을 느낄 정도로 악랄하진 못했다. 대체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하나 싶었지만, 나를 사랑하면서도 내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고 기뻐했던 이민형을 떠올리면… 순식간에 그러려니 체념하게 됐다. 이민형의 기준에선 말도 안 되는 게 자연스럽기도 하고, 당연한 게 말도 안 되기도 하며 뒤죽박죽이었다.



  “도망 갈 생각도 없긴 한데, 도망 가면 뭐 해. 어차피 네가 찾아낼 텐데.”



지금만큼은 이민형이 원하는 건 사랑이 아니었다. 내가 이민형을 사랑하지 않아도, 아무리도 도망치고 발버둥쳐도, 결론은 제 곁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는 확신이었다. 이민형이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머리카락이 사박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 목에 비벼졌다. 꽤 맘에 드는 답인 것 같았다.



  “어, 맞아. 또 도망가면 또 찾아내면 돼. 나 돈도 많고 시간도 많아. 얼마가 들고 얼마가 걸리든 상관 없어. 무조건 찾을 거야.“

  “...”

  “죽을 때까지, 아니 죽어서도 너 안 놔 줘. 그러니까 허튼 꿈 꾸지도 마.”



 벗어날 수 없다고, 죽어서도 안 놔줄 거라고 중얼거리는 말은 나한테 하는 거라기보단 스스로한테 하는 세뇌처럼 들렸다. 섬찟함과 체념 사이에서 체념이 익숙하게 크기를 키웠다. 날 안은 팔에 힘이 잔뜩 더해지며 몸이 맞닿는 면적이 늘어갔고, 어정쩡하게 눌린 자세가 불편해져 뒤척거리면 무게로 눌러 나를 못 움직이게 했다. 무언의 압박을 느낀 후론 그냥 가만히 있었다. 조바심에 눈이 돌기 직전인 이민형의 심기를 건드리는 짓은 위험했다. 여기가 할아버지의 장례식장이든 말든 심기 뒤틀린 욕심을 채우기 위해 기어코 내 옷을 벗기고 올라탈 인간이 이민형이었다. 


 새삼스럽지만. 할아버지는 이민형을 불효자식으로 키운 게 맞았다.






**





 저 사람 진짜 개또라이더라고요. 근데 언니는 너무 제정신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해서…

 혹시 막, 협박 당한 거예요? 내가 그때 언니한테 폭탄 넘긴 거예요? 

 그럼 내가 대신 신고해줄 테니까 말해요. 전 저 미친놈 말고 언니 편이에요. 



 둘째 날에 조문을 온 사람 중 하나는, 이민형과 결혼할 뻔했던 그 여자였다. 부모님과 함께였다. 이민형에게 사적으로 얘기 한 마디 안 건넨 채 최소한의 예의만 보이고 바로 돌아서는 부모님과 다르게 여자는 우리에게 관심이 많았다. 아니, 확실히 말하자면 나에게. 


 이민형이 곧바로 다른 손님을 맞이하느라 생긴 틈에 나를 빈소 밖 복도로 끌어내 퍽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그게 어이없고 귀여워서 실없이 웃음이 터져버렸다. 슬쩍 빈소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날 찾는 이민형의 시선이 분주하게 주변을 훑고 있었다. 아침부터 내 핸드폰에 지갑, 차 키까지 모두 뺏어가고 건물 밖으론 아예 못 나가게 가드까지 세워뒀는데 그 새를 못 참고 나를 찾는 이민형이 숨 막히긴커녕 안쓰럽게만 느껴지는 걸 보면서, 나도 글러먹었단 생각을 했다.


 저도 제정신 아니에요. 그러니까 쟤 옆에 있죠.


 조마조마한 듯 내 표정을 살피던 여자는, 내 말에 멍하니 눈만 깜빡였다. 여전히 미심쩍은 기색을 지우지 못해서 정말 괜찮은 거 맞다고 오히려 내가 설득하듯 말해야 했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설명했다간 경악한 여자가 나 모르게 신고할 것 같아서, 적당히 그쯤에서 말을 끊었다.


 신고 따위로 끊어질 인연이었다면 이미 진작에 끊기고도 남았을 거다. 날 찾겠다고 여태 했던 짓거리를 생각하면 이민형 말대로 아마 죽을 때까지, 아니 죽고 나서도 집요하고 지독하게 나를 붙잡고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뭐야. 둘이 원래 알아? 무슨 얘기했어?”



 여자와 나를 발견한 이민형의 시선이 점점 굳어가길래, 여자한테 불똥 튀기 전에 얼른 돌려보내고 자리로 돌아왔다. 역시나 이민형은 습관처럼 내 손목부터 잡아챘다. 할아버지의 영정사진을 힐끔 보고 나니 한숨이 터졌다. 할아버지 앞에서 말하긴 좀 그렇지만,



  “너 개또라이라는데.”

  “...뭐?”

  “미친놈 같아서 나 걱정 된대.”

  


 말하고 나니 속은 좀 시원했다. 할 말을 잃고 벙찐 이민형의 얼굴이 봐줄만 했다.





**





  “어디 가지 말고 지키고 있어야 돼.”

  “알았어.”

  “필요한 거 있음 지금 챙겨. 편의점도 가지 마. 여기 돌아오지도 말고.”

  “그래.”

  “...병원 밖으로 절대 나가지 마. 나 말했어.”

  “아, 안 가. 안 나간다고.”

  “...”

  “네가 내 핸드폰 지갑 차 키 다 뺏어갔잖아. 빈털터리인데 내가 어딜 어떻게 가.”



 몇 번이고 되풀이되는 똑같은 내용의 경고에 귀가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심호흡 같은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이민형의 눈을 똑바로 마주친 채 대답했다. 아무데도 가지 않겠다고. 네가 시킨대로 하겠다고. 그제야 이민형은 꽉 붙잡고 있던 내 옷가지를 놔줬다.


 장례의 마지막 날. 발인. 새벽부터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고, 이민형은 마지막 순서를 앞두고 별안간 나더러 나가라고 했다. 곧 운구차와 유족들을 태운 버스가 화장터로 모두 떠나면 그동안 중환자실에 계신 할머니를 지킬 사람이 없으니 내가 가 있으라는 말이었다. 다행히 의식도 돌아오셨고 오늘 오후쯤엔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을 분명 들었는데. 할머니는 핑계에 불과했다. 이민형이 뭘 걱정하는 지는 이미 알았다. 


 할아버지를 보내드리는 마지막 날이니 다시 한번 가족 친지들이 모일 거고, 그 중에는 재현 오빠가 있었다. 내가 장례식장에 계속 남아 있으면 무조건 오빠와 마주칠 수밖에 없으니 어떻게든 나를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속셈이었다.


 어차피 나 역시 이민형 옆을 지킨 채로 재현 오빠를 맞닥뜨리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반갑게 인사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처럼 무시할 수도 없고. 뻔뻔하지 못한 내가 오빠 앞에서 허둥대고 긴장하면 이민형은 또 불안해하고 잔뜩 화가 날 거고. 재회는 생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장면들뿐이었다. 이민형이 갱생 못할 패륜아로 남아 할아버지의 장례를 망치는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그런 일은 없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면목이 없었다. 날 구렁텅이에서 꺼내주겠다고 오빠의 인생까지 걸고 내게 내민 손을 기어코 뿌리쳤다. 그 외롭고 막막한 곳에 오빠를 혼자 남겨두고, 이민형에게로 떠나버렸다. 더는 오빠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게 내가 그나마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다.


 10분 후 도착하신다고 합니다.


 가드 하나가 이민형에게 전하는 귓속말이 흐릿하게나마 들렸다. 아마 재현 오빠네 가족을 말하는 것 같았다. 다 들렸지만 모르는 척, 관심 없는 척 딴짓을 했다. 



  “얼른, 가.”

  “알았어.”



 날 떠미는 이민형에게 태연하게 대답하고 뒤를 돌았다. 할머니가 계시는 중환자실은 장례식장 건물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였다. 괜히 정문 입구로 나갔다간 들어오는 차와 마주칠까 걱정이 돼서 후문 쪽으로 발을 틀었다. 보이진 않지만 뒷통수가 따끔거리는 게, 이민형의 시선이 빤히 나를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코너를 돌기가 무섭게 따라붙은 발소리가 다급하게 나를 잡아세웠다.



  “3시간이면 된대. 유골함 넣자마자 바로 병원으로 올 거야.”

  “응.”

  “나 돌아올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응.”

  “...가면 안 돼. 너, 여기 있어야 돼.”



 뛰어온 이민형이 내 두 팔을 꽉 쥔 채, 다시 한번 말했다. 얼마 뛰지도 않았으면서 숨소리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나를 붙잡은 팔 위로 솟아난 핏줄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상하게 간절해보였다.



  “응. 다녀 와.”



 대답 뒤로 이어지는 정적이 길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이민형도 나도 움직이지 않은 채 눈만 맞췄다. 피하지 않은 채 만족할 만큼 시선을 내어줬다. 


 상주 분 어디 계세요? 이제 곧…

 그러다 상조 회사의 직원이 이민형을 찾는 목소리에, 결국 내가 먼저 붙잡은 팔을 하나씩 떼어내고, 등을 떠밀었다. 시야 밖으로 사라진 이민형의 발걸음 소리는 자주 멈췄다. 아마 보이지 않는 나를 돌아보는 것 같았다.


 이틀만에 나와보는 바깥의 날씨는 따뜻했다. 건물 입구와 찻길이 있는 곳을 피해 건물 뒤쪽의 조용한 길을 걷고 있으니 모든 게 현실과 다르게 평화롭다는 착각이 들었다. 잔잔한 기분이 문득 어색하게 느껴졌다. 큰 일은 꼭, 이런 때에 터지던데. 싱거운 생각을 하며 눈길 닿는대로 멍하게 바라보며 느긋하게 걸었다. 중환자실이 있는 건물까지는 금방이었다. 



 “...아.”



 그리고 내 생각이 맞다고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방심하길 기다렸다 덮치는 것처럼, 재현 오빠가 나타났다.


 2중으로 되어있는 병원의 유리문 너머로 오빠가 보였다. 그리고 오빠한테도 내가 보인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고 있는 건 착각이 아니었다.


심장이 쿵, 몸 밖으로 굴러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대로 잠시 굳어있다가 급하게 몸을 돌렸다. 마주친 이유에 대해 깊게 생각할 겨를은 없었다. 그냥 피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를 위해서도, 오빠를 위해서도 우린 마주치면 안 됐다. 심장이 따끔거리고 머리는 어지러웠다. 따라오거나 날 부르는 소리 따위는 없었는데도 발걸음은 자꾸만 쫓기는 것처럼 다급해졌다. 


 그러다 얼마 가지도 못해 결국, 엎어졌다. 아무것도 없는 판판한 길인데 멍청하게 혼자 발이 꼬여버렸다. 급하게 손으로 땅을 짚었지만, 얇고 길게 긁힌 생채기가 순식간에 손바닥을 잔뜩 뒤덮었다. 흙먼지 묻는 손 위로 붉은 피가 차오르는 장면이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그리고 급하게 따라붙는 발소리가 순간의 흐름을 겨우 정상 배속으로 돌려놨다. 금세 내 곁에 다가온 누군가가 훅 몸을 낮춰 앉을 때 퍼지는 익숙하고 옅은 향수의 향기가 직접 보지 않아도 그 존재를 알려왔다. 오빠에게 향수를 선물 받았던, 아까워서 힘들 때만 겨우 한번씩 향을 맡던, 언젠가의 기억이 번뜩 스쳐갔다. 독일에서의 무료하고 평화롭던 순간들 역시.



  “나도 웬만하면 모르는 척하고 싶었는데.”

  “...”

  “그게… 쉽지가 않네.”



 까만 정장 자켓 안에서 나온 손수건이 내 손을 덮고, 내 상처를 닦아내는 옆모습을 숨도 못 쉰 채 바라보기만 했다. 오빠의 손은 딱 봄 날씨만큼 따스했다.



 



 


별의 별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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